여성동원

AOO 할머니 이야기

만주 연길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됨

 
  • 1930년출생
  • 1943년 9월경상북도에서 동원
  • 1943년 9월청진을 경유하여 만주 연길(延吉, 現 중국 옌지)로 이동, 2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
  • 1945년 경해방 후 도보로 귀국

 

 

할머니, 만주 갔던 얘기 좀 해주세요. 어떻게 해서 만주까지 가게 되셨어요?

 

그때 우리 집이 장사를 했거든. 내가 장터에 있으니께네. 장터에 소개한 사람 집이 있는데 날 좀 오라 카대, 그래 내가 ‘뭐 할라고요?’, 그러니께네 만주 실 푸는 공장에 가면 돈을 갈고리로 끈다 카데. 우리 엄마도 모르고, 우리 아버지도 모르고, 몰래, 입은 그대로 가는 기라.

 

소개소 사람이 할머니한테 돈 갈고리로 끄는데 간다고 했어요?

 

‘돈 많이 벌거든, 조선 나오거든 날 좀 도와 줘’. 라고 말하더라.

 

그렇게 만주로 가셨어요?

 

응. 만주 연길역에 턱 내리니까네, 군용차가, 화물차 같은 게 오는 기라. 전부 실어가, 그래 갔다. 그래 내리니까는 인제 뭐, 참 공장 같애. 그래 그 집이 우리 있을 집이라. 뭐 창고 같은데. 꼭 공장 같대. 그래가 밥이라고 주는 게 한 그릇 주는 거 먹으려고 보니, 죽 그릇에 내 얼굴이 다 비치는 기라. 멀겋게 죽을 써 주는데. 그래도 배가 고프니 그거를 먹지 어쩌겠냐, 먹고. 그래 창고 같은데, 여기가 공장인가 하는데, 기계도 하나도 없고. 창고 같이 방문이 하나씩 다 있는기라. 그래가지고 그 이튿날인가, 그 이튿날 인제 새로 들어온 사람들하고 전부 들 어온 사람들을 검사하러 가대. ‘검사하러 간다’ 그러데. 내일은 검사하러 간다 카대. 그래서 내가, 검사는 무슨 검사. 신체검사 하나 했더 니 신체검사 한다 그래. 그때는 아직 안 두드려 맞고. 그래 참 떡 가니께네, 그래 누우라고 해서 다이(台 : 받침대) 있는데 누우니까, 오리주둥이 같은 거(부인과 검진 기구), 그게 안 들어가는데 뭐. 아이고, 저기 보면 어쩌겠나, 하면서 내가 부둥켜안고. 그래, 검사하러 가서 오리주둥이 같은 것 자궁에 넣으니까는, 열네 살 먹은 게 자궁이 벌어지나. 그 얘기만 하면 이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데. 감당을 못 하겠으니.

 

천천히 말씀하세요, 할머니.

 

그래가 가가지고, 도저히 검사하는 사람이 자궁이 안 열려 가지고, 검사를 못 하겠다 하는 기라. 오리 주둥이 같은 것 그거를 갖다 자궁에다 넣으니까네 이제 열네 살 먹은 게 그게 자궁이 벌어지나. 그래 일본말로 자기들끼리 ‘데키나이요(できないよ: 안돼요)’ 이러 카대. 내가 일본말은 대강 알아듣는데. 그래, 나를 손님 안 받는다고, ‘여기가 도대체 뭐하는 데고?’ 내가 물으니까네. ‘위안부라’ 하는 기라, 그래 ‘위안부는 뭐하는 데고?’ 물으니께네, 손님 받고 조선말 같으면 청루택이라[창녀들이 있는 집과 같은 거라]. 그래 내가, 에이 이런 데 같았으면 내가 안 왔지.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알면 결단난다, 나는 죽는다. 주인은 날 끄집어 가고 온실 안에다 넣어 놓고, 아휴, 내가 그 말을 어디다 다. 그 말만 하면 심장이 뛰고, 내가 미쳐 나갈 것 같애. 만주, 아휴. 열여섯 살에 해방이 되었는데, 너무 뚜드려 맞지, 차라리 손님 받는 게 안 나았겠는가. 이렇게 내가 배가 고프고. (울먹이며) 내가 이래 가지고 내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죽으면 안 편하겠나. 이러다가 내가, 아휴, 살면서 내가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만나봐야지. 이 놈은 뚜드려 패지 그 말을 다 못 한다. 그 말만 하면 내가 심장이 뛰고. 어휴, 심장이 뛰고 내가....... (우느라 숨이 넘어가는 소리)

 

할머니, 물 좀 드세요.

 

그래 내가, 뚜드려......온실안에 넣어 놓고 뚜드려패고, 이 등줄기가 뚜드려 맞아가 이 손가락이 부러질 정돈데. 이렇게 부어서, 아이고 내가(통곡) 손이 아파 이래가 있는 데도 뚜드려 패고. 배가 아파 죽겠는데도 뚜드려 패고. 이 등줄기를 얼마나 팼던지 자줏빛이 났던 거를, 뚜드려 맞아가지고. 요새 같으면 내 자살 했을끼다.

 

주인은 일본사람이에요?

 

일본사람이지. 일본놈이라. 남자주인도 있고, 여자주인도 있고. 그래 내가 아무 얘기도 안했다 하니까네. ‘코노야로(このやろ う : 이 자식)’, 이래 하면서 막, 온실 안에다 또 때려 넣어다가 바른말 하라고, 막 때리는 기라. 그럼 뭐 아무 말도 안하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거 그것만 하고 뭐, 그것밖에 안 물었다고 그라니까네. 그래도 문 잠가놓 고, 아이고 내가 그 고생한 거를. 이 등줄기가 뚜드려 맞아, 이 손가락이 부러져 가지고, 이거 봐라 이거. 내 조선 나와 가지고, 그 얘기만 하면 이 심장이 뛰어. 숨결이 가쁘고 마, 말 못 한다.

 

주인이 할머니를 그렇게 때렸어요?

 

응. 그 일본놈 위안부 주인이. 아휴, 뚜드려 맞은 게 인제 골병이야, 이게.

 

그럼 검사는 처음에 갔을때 받고 안 받았어요?

 

그래 뭐 인제 금요일인가, 뭐, 매 주 요일, 내일은 검사하러 간다카데. 그래 병이 있는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검사 새로 받을 동안은 손님 못 받게 하지. 그 검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래 가는데, 나는 처음에 검사했을 때 안 되니까, 아예 가자 소리도 안 해. 일주일에 한번 빠지고 두 번째 또 가자 그래, 그래 갔지. 가도 여전히 마찬가지거든. 뚜드려 맞으니 더 부었지. 그러니까는 의사도 그러데, ‘고노야로 데키나이요 (このやろう, できないよ: 이 녀석은 안돼)’, 그라면서로. 그랬더니 나를 창고 같은데 넣어가 대뜸 잠가놓고 먹을 것도 안 주는기라. 아이고, 내 고생한, 이 얘기만 하면 이 심장이 막 뛰어. 이 심장이 뛰어, 말로 못하고. 내 고생한 것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지. 아무도 몰러. 어디 가서 이 말을 다 하겠나.

다른 여자들도 그렇게 맞았어요?

 

딴 사람들은 안 그러고. 나는 손님을 제대로 못 받으니께. 내가 인자 간 중에서 내가 손님을 제일 못 받지. 내가 제일로다가 어리고.

 

그럼 손님은 안 받았어요?

 

손님 받았지.

 

언제부터요?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받았지.

 

손님은 어떤 사람들이예요?

 

전부 군인들뿐이지.

 

할머니 그때 생리는 있었어요?

 

어. 그때 없었지. 내 조선 나온 게 열여섯 살 되던 해. 그 때 생리가 있었지. 그래가 우리 엄마한테 얘기하니까, 여자들은 그렇게 되어 있다고. 그라니 생리도 없는 게 뭐, 그래 만주 가가 뭐 했냐고 우리 동생들이 물어서 실 푸는 공장에 있었다고. 인자 혼자 다 알게 되었지. 이제 생리를 하니께, 이제 위안부라고 하는....... 아이 그 얘기만 하면 심장이.......

 

그 집에 여자들이 몇 명 있었어요?

 

여자들이 각처에서 모두 온 것들이 한 이십 명 될 끼구만.

 

병 걸린 사람은 없었어요?

 

일 주일에 한번씩 검사를 하니께네 병 걸린 사람이 있나.

 

검사는 어떤 곳에서 해요?

 

걸어가는 데 얼마 되지는 않았어. 걸어 갔지. 안 멀어. 일본 놈들이, 병원에 있는 놈들이 인제 와갖고서 검사하지. 창고 같은 데, 이런 데 눕는 자리가 있데.

 

눕는 자리가 하나예요?

 

몇 개나 되지.

 

검사 하는 사람들도 여러명 있었겠네요?

 

있었지. ‘다이’(台:받침대) 하나에 의사가 하나쓱 다 있는기라. ‘다이’가 있어. ‘다이’에 올라가면, 침대가 아니고, 뭐 나무침대라. 다리 밑에 보는 데가 있어. 아휴.

 

의사는 다 남자예요?

 

남자지. 전부 군인이라, 군인의사들이야. 군인의사들이야.

 

검진대.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 ‘위안부’와 나치독일수용소의 강제 성노동』, 2007년, 24쪽 수록 사진.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성병검진을 받아야 했다. 정기 검진은 위안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성병 감염으로 인한 군사력 손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간호원은 없고요?

 

간호원은 없고.

 

늘 똑같은 집에서 검사를 했어요?

 

응. 똑같은 집에서.

 

검사 받으러 가면은 아가씨 스무 명이 다 갔어요?

 

다 가야지.

 

거기가 병원이예요?

 

병원이 아니고.

 

다른 환자들은 없어요?

 

없고. 거,가는 데가 있다. 검사하러 가는 데가 있어. 

검사하러 갔을 때, 할머니가 있던 집 언니들 말고, 거기 가면 모르는 여자들도 왔어요?

 

왔지. 많아. 딴 집의 여자들도 많이 와요. 그러면 그 사람들도 검사하고 그래.

 

딴 집은 근처에 있어요?

 

집은 어디쯤 있는지 모르고. 검사하는 날에는 전부 검사하러 오지.

 

딴 집의 여자들 다 조선여자에요? 중국 여자는 없던가요?

 

중국 여자는 없고, 전부 조선여자.

 

할머니, ‘삿쿠’(콘돔)라고 들어봤어요?

 

응. 그거, 그거 다 안 쓸라고 하는 놈도 있 고, 쓸라 하는 놈도 있고 그래. 근데 다 썼지.

 

생리도 없는데 ‘삿쿠’를 썼어요?

 

그럼, 다했지. 인자 병 오를까봐 그러지.

 

그 ‘삿쿠’는 누가 줬어요?

 

주인이 다 하나앞에 몇 개씩 주는데. 그라고 손님 받고 이라니까네, 하얀 약을 하나 주데. 그거를 먹어야 몸에 병이 안 온다 이러 카데. 그래서 내가, 에이 더러운 놈들 하면서 약을 안 먹고 내버렸지. 그래, 임신할까봐 그래 주는기라 카데. 그걸 또 안 먹고 내버렸다고 머리 또 얼마나 뚜드려 맞고.

 

그냥 몰래 버리지 그랬어요.

 

그게 몰래 버렸는데, 하여튼 내가 그때는 솔직해서. 버렸다고 했거든. 내버렸다 카지 말고 그냥 먹었다 카면 될 낀데, 그때 내가 내뿌렸던 건 내뿌렸다, 내가 도둑질 한 건 도둑질 했다, 이렇게....

 

거기에서 애기 가진 사람은 없었어요?

 

아기 가진 사람 없어. 하얀 약 그게, 얼라 못 가지게 하는 약이던 모양이라. 그거 내버렸다고 얼마나 뚜들겨 맞았는지.

 

중국의 일본군 지정 위안소.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 ‘위안부’와 나치독일수용소의 강제 성노동』, 2007년, 22쪽 수록 사진.

할머니, 군인이 뭐 또 갖고 온 건 없었어요?

 

군인들이 떡을 해와서, 그래 나한테 오는 놈이 그래 주는기라.

 

돈은요?

 

돈은 나는 통 모르고, 돈은 통 모르고, 주로 인자 표로 주지.

 

표를 받았어요?

 

아, 군인들이 표를 주면 그거 받아서 주인 줘. 아이고, 아이고, 죽어야지. 기가 막히지.

 

군인들이 언제 와요?

 

토요일부터 시작하니 일요일 뭐, 월요일에는 장교들. 장교들은 인자 말타고 오는 놈도 있고, 걸어오는 놈들도 있고. 장교들은 많이 안와.

 

손님 받은 다음부터는 안맞았어요?

 

그때는 인자 안뚜드려 패지. 하나를 받든가, 둘을 받든가. 그 짓을 일 년을 하고 나니, 하이고, 내가 만주 얘기만 하면 이 심장이 이래, 이 이야기를 해도 다 모른다.

 

손님들이 할머니를 뭐라고 불렀어요?

 

‘기미코.’

 

할머니 있던 곳에 할머니 사진을 붙여 놓던가요?

 

안 붙여. 그저 이름을 부르고 그라지, 사진 붙이고 그런 거 없데.

 

누가 이름을 불러요?

 

인자, 한번씩 왔던 놈들은 인자 찾지. 몇호실 그런거, 일호, 이호, 삼호, 이래 방 이름이 있지. 그라면 그 방에 기다리고 있지. 내가 어디 가버리고 없으면. 화장실에 가던지, 뭐 밥 먹으러 가던지 하면, 즈그들이 나와 가지고 거기에 기다리고 있지. 내가 일본말 하도 잘하니 나한테 군인들이 그래, 절대 조선 사람이 아니고 일본 사람이라고 그랬지. 그래, 일본군인도 조선말 잘하는 게 있거든. ‘니 성이 뭐고?’ 묻데. 그래 ‘내 성은 ✽가(家)’라 카니카네. ‘성을 물어봐도 조선 사람인데 일본말을 어디서 그렇게 배웠나?’ 묻더라고. ‘너희들 상대해가지고 그래 내가 이래 되었다’, ‘그래, 뭐 하러 여기 들어왔노’ 그러대. ‘너희들 좋은일 시킨다고 안 들어왔나’. 내가 여자만 아니었으면 그런데 안 갔을낀데, 여자니까 그렇지.

 

거기 몇호실까지 있었어요?

 

방이 이십사혼가. 이십사호, 이십오호 이렇게 있었지. 아이고, 내가 거기 말만 하면 심장이 이래 뛴다, 그냥.

 

제 심장도 뛰어요.

 

인자 마, 꿈에 볼까봐 겁날 정도다. 손발이 오그라진다, 손발이 오그라진다. 아휴, 그래 나 같이 불쌍한 사람이 어디 또 있겠노?

 

 

 

 

 

 

할머니 여기 다리에 흉터는 뭐예요?

 

이거 만주 가서, 그 놈들이 뚜드려 패서 이래. 이제야 흉터가 이렇지. 그 당시에는 이게 헐어가지고, 이래 흉터가 남아가. 오온갖데 다 때리지 뭐. 등줄기가 자줏빛이야. 그래서 그런지 다리가 그렇게 아파. 아이고. 이제 흉터라고 이렇지. 그 당시에는 이래 부어갖고. 다리도 이렇지. 이 손도 이래 부어가 있지. 만주, 아휴, 열여섯 살에 해방이 되었는데. 인제 해방 되니께 일본 놈은 다 도망가 버리고 없는데, 중국 그 머슴아가 자기 집에 가 있으라 하는 거야. 지그집에 가니까네 그 만두, 만두 그것을 국을 끊여 갖고 그것도 한 그릇 또 주고 이라는 기라. 일본 놈들 다 가고 나니까네 거기 있어야지. 뭐 묵을 게 있나. 인자 그러면 밭에 다니며 토마토도 따 먹고 거기 가면 만둣국도 끓여가 주고, 밥 먹다가. 나물 심은 것도 밥 먹으라 카고. 그래 자꾸 먹으라고 주니까네, 자꾸 거기 가가지고 정 붙이기 좋고, 그렇데.

 

돌아올 때는 어떻게 돌아오셨어요?

 

그 중국 머슴아가 해방됐다고 날보고 인제 ‘조선에 가서 엄마 아버지를 만나라’ 카면서, 그래 옷이 없어. 뭘 입 고 갈꼬. 그 머슴아가 ‘내 즈봉(ズボン : 바지) 줄게. 내 즈봉(바지)하고 내 우아기(上着 : 상의)하고 줄게’, 해서 입고 그래. 두만강인가 대동강인가 뭐.... 오다 배 타고 건너는 데가 있데. 그래 거기 와가지고 이쪽에는 러시아 사람 서 있고, 저쪽에는 미군이 서 있고 그래. 저 강 건너. 그래, 만져보면 그래 여자 같으면, 뭐 중국에 도로 밀어 넣어 부리고 거 한 데까지. 그래, 그것 때문에도 뭐 열여섯 살 먹은 게 뭣이 젖이 크겠나. 젖이 빈대같이 딱 붙었지. 그래 그거를 입고 나오니께네, 이래 만져 보니께니 아무 것도 없거든. 그래, 나를 보고 건너가라고, 그래 건너 가 저쪽에, 그때부터 또 걸어오는 기라. 이 발바닥이 참, 그래가 참 이 발바닥이 전부 다 부풀어 터져가 걸음도 뭐 몇 십리 길을 걸었는데. 뭐 발바닥이 다 부풀어 다 터지고. 그래, 내가 마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심장이 뛰기를 시작 하는데, 감당을 못 하지. 올 때도 빈손으로 왔는데, 뭐 내사 입은 것 이것 뿐이다 카고. 입은 것 이제, 중국집에 가가지고 옷 한 벌 얻어 입은 것 그 것뿐인데, 그 옷도 다 태워 버리고, 다 태워 뿌고 머리도 빡빡 깎아 버렸고 뭐 이가 버글버글 했는데 뭐, 한 달 동안 입었으니께네.

 

[같이 인터뷰를 하던 동생의 증언] 언니가 모자 쓰고, 누런 중국옷 비슷한 것, 일본 옷도 아니고, 요새 그 인민군 옷 비슷한 거 입고. ‘지카다비(地下足袋:노동작업화)’ 신고. 엄마~ 카면서 들어오는데 우리 엄마 놀라 뒤로 자빠졌다. 맨 발 벗고 쫓아 나가더라, 우리 엄마. 두 달 동안 걸어왔다 카대. 솜을 넣어 누빈 옷 비슷하지만 제대로 누빈 옷은 아닌], 드문드문 해졌는 거[해진 것], 중국 놈들 입는 옷, 모자는 중국 모자, 머리는 홀랑 깍고. 남자들처럼 그렇게 나왔드라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같이 나왔어요?

 

같이 나온 애들 한 서넛이 될끼구마. 내가 ‘키미코’고, ‘미야코’, 또, 아이고 ‘유끼코’, ‘하루콘’가 있을끼구마는. 같이 나와서 그 사람들은 가다가 뿔뿔이 다 헤어졌지. 내가 입이 말라 죽겠다, 그 만주 얘기만 하면 이 숨결이 가빠. 만주서 오다가 나오니 배가 고프니까네. 밭에 뭐가 있길래 토마토도 따 먹고, 감자 심어 놓은 것, 감자도 캐 먹고, 배가 고프니까네 먹지. 그래, 오다가 인자 어디인지 모르니까, 그거 감자도 묵고 인자, 아무 조선집에 가갔고 밥 좀 달라고 해서 밥도 얻어먹고, 고생하고 오는데 밥이라도 있으면, 더 있으면 줄 낀데. 그 물에 말아 가지고, 한 숟가락 묵고, 얼른 우리 집에 오고 싶어갖고. 그래가 조선 나가면, 우리 집에 가면, 김치 해 가지고 보리밥 그게 먹고 싶어갖고, 얼른 가야 될 낀데, 내가. 밤이라도 걸어오고, 안 그라면 잠이 오면 마 아무데나 구부러져 가지고 잠을 자고. 내가 고생한 거는. 내 고생 한거는 하늘이 알고 땅이나 알지, 또 모른다.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회생자 등 지원위원회 발간) p76~p95. 요약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