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군속 동원

개요

군인 동원이란?
제국주의 일본은 중일전쟁에 들어서면서 ‘신성한 황군을 더럽힌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던 조선인을 1937년 12월 [조선인 특별지원병제]와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여 전장으로 내몰기 시작한다. 더보기
군인 동원이란?
제국주의 일본은 중일전쟁에 들어서면서 ‘신성한 황군을 더럽힌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던 조선인을 1937년 12월 [조선인 특별지원병제]와 1938년 2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하여 전장으로 내몰기 시작한다.
지원병령 제1조에는 ‘호적법(본토의 일본인에게만 적용되었음)에 적용되지 않는 17세 이상의 제국 신민인 남자로서 육군에 복무할 것을 지원한 자는 현역 또는 제1보충역에 편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학도 지원병 4385명, 해군 특별 지원병 및 해군 약 22,000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1941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제국의회에 제출한 통계에서도 전체 지원자 가운데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은 35%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강압에 의해 마지못해 지원한 사람이었다. 이조차 조선 총독부가 체면치레를 위해 ‘다소’ 숫자를 조작한 결과라는 점에서 진짜 자신의 의지로 지원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1943년 8월 [해군특별지원병제]를 실시하였다. 이 때에는 이미 일본 해군이 점차 기울어져 가는 시기였다. 남방전선에서 연전연패를 당하고 많은 함선을 상실하여 병력이 심각하게 부족하였다. 부득이 ‘조선인의 손이라도 빌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1943년 10월에는 [학도지원병제]를, 194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징병제]를 실시하여 1945년 8월까지 20만 9천명(육군 18만 7천명, 해군 2만 2천명)을 동원했다. 군무원을 포함해서 21,699명이 전사하였다. 5만명 이상이 중국전선에 투입되었으며 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1,100명이 전사하였다. 이들은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과 함께 억지로 합사되어 있다.

군속(군무원) 동원이란?
군속(군무원)은 일본 육해군에 소속된 민간 인력을 말한다. 군인은 아니지만 최전선 군사시설 건축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 군인만큼이나 피해를 입었다. 당시 ‘군속’, ‘군부’, ‘군요원’ 등으로 불렀다.
국민징용령, 각종 규칙에 의해 동원되었고, 중부, 서부 태평양 지역에서는 현지에서 채용하는 방법도 이용했다. 한반도,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중서, 서부 태평양 제도의 군 기지와 전선에 동원했다. 약 15만 명이 강제 동원되었다.
군무원의 관리체계는 노무자와 달랐지만 포로감시원 등을 제외하면 업무 내용은 노무자와 차이가 없었다. 국민징용령 이후 동원된 경우가 많았으며, 노무자로 동원되었다가 신분이 바뀌거나 선박 징발과 함께 선원이 군무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동원 당국도 노무자와 군무원을 공문서에서 혼용 등재하는 등 관리 체계도 명확하지 않았다.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