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원 개요

일본군 ‘위안부’란?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가 1931년 만주침략 이후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말한다.
1932년 상하이(上海)에서 시작된 ‘위안소'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급격히 늘어났으며 점령지 확대에 따라 거의 모든 일본군 주둔지로 확대되었다.
피해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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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란?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가 1931년 만주침략 이후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말한다.
1932년 상하이(上海)에서 시작된 ‘위안소'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급격히 늘어났으며 점령지 확대에 따라 거의 모든 일본군 주둔지로 확대되었다.
피해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는 문제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지 않으나, 당시 일제가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용어로 정착되었다. 영어로는 본질적인 의미를 반영하여 ‘일본군 성노예(Sex Slaves)'를 사용한다.

여자근로정신대란?
조선여자근로정신대(朝鮮女子勤勞挺身隊)를 말하는 것으로,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직된 태평양 전쟁 지원 조직이다. 본래 정신대는 ‘국가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여러 분야의 전쟁 지원 단체에 붙여 사용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시체제 하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근로정신대'가 조직되어 전쟁 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여성 대원으로 이루어진 ‘여자근로정신대'도 결성되었다.
조선에서 여자근로정신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미 특별한 법적 근거 없이 실시되고 있던 조선의 여자근로정신대는 1944년 8월 23일에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면서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했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법령은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도 적용되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는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으며, 군수공장 등에 투입되었다. 동원 방법은 관청의 알선, 공개 모집, 자발적인 지원, 학교나 단체를 통한 선전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근로정신대로서 동원된 일본과 조선의 여성은 20만명이며, 그 중 조선인은 5만에서 7만명이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노동력의 동원이라는 점에서 성적 착취가 이루어진 위안부와는 다르다. 종전 후 '위안부'와 혼용하여 정신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근로정신대로 강제노역을 마치고 온 여성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경력자로 오해 받을까봐 근로정신대원이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고 살아온 경우도 있었다.더보기